왕목사 칼럼

돌에 맞은 사도가 다시 길을 떠난 이유 —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예루살렘 공의회, 그리고 2차 전도여행

Pastor Wang 2026. 5. 2. 04:55

돌에 맞은 사도가 다시 길을 떠난 이유

1. 1차 전도여행 — 한 메시지를 위해 돌에 맞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바나바와 함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사도행전을 따라가면 도시 이름들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사실 이 여행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할례를 받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문장이 그저 율법주의 비판 정도로 들리지만, 1세기 청중에게는 훨씬 더 충격적인 뜻이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곧 유대인이 된다는 의미였다. 종교적으로 개종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바울의 메시지를 그들의 언어로 풀어 옮기면 이렇게 된다.
"너희가 유대인이 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당시 회당의 일반적인 가르침은 이와 정반대였다. "너희는 인종적으로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하면, 즉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면 아브라함의 자손, 곧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너희가 유대인이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이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바리새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해 있다가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행15:5, 쉬운성경] ” 다시 말해 구원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예수 + 유대인 되기.
바울은 이 등식을 정면으로 부쉈다. 예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율법도 할례도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유대인이 되지 않아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처음에 회당의 유대인들은 이 메시지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듣다 보니까 점점 분명해진다. "저 사람은 지금 유대인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잖아? 우리가 가진 할례와 율법이 무가치하다는 것이잖아? 그러면 저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다. 배교자다.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도시마다 쫓겨났고, 결국 루스드라에서는 실제로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그는 다시 일어나 교회들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안디옥으로 돌아온다.

2. 갈라디아서 —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쓴 편지

그런데 바울이 안디옥에 돌아왔을 때,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내려온다. 그들이 가르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네가 예수를 믿었어도, 구원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내내 죽음을 무릅쓰고 무너뜨렸던 그 등식을, 이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안에 다시 세우려 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유대교에 충실한 사람들, 곧 율법주의자들이었다.
바울이 화가 났다. 자기가 그것 때문에 돌에 맞았는데, 자기가 그것 때문에 죽다 살아났는데, 이제 그 가르침을 다시 가져온다고? 바울은 그들과 격렬하게 변론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다.
공의회에서 베드로가 일어나 증언했다. 자기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그저 말만 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하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중에 일어났던 일들을 보고했다.
마지막에 야고보가 일어나 결론을 내린다.
"이방인들에게 율법과 할례를 강요하지 말자. 다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은 멀리하라고 권하자."
이 결론을 담은 편지가 작성됐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실라가 바울,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그 편지를 들고 내려간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급하게 써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갈라디아서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나는 갈라디아서가 1차 전도여행과 2차 전도여행 사이, 예루살렘 공의회 즈음에 쓰인 가장 빠른 바울 서신이라고 본다. 갈라디아서 마지막에 바울이 이렇게 쓰기 때문이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 6:17)
이 "예수의 흔적"이 1차 전도여행 때 받은 그 돌팔매질의 상처라면, 짧게는 몇 개월, 길어야 1~2년 사이에 쓰인 편지라는 말이 된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몸으로 바울은 외친 것이다. "내가 이것 때문에 돌에 맞았다. 그러니 더 이상 율법을 지키라고 왈가왈부하지 말아라."

3. 2차 전도여행 — 절뚝거리며 다시 떠나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편지는 이미 보냈다. 갈라디아서도 보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바나바에게 말한다.
"우리가 갔던 교회들을 다시 돌아보러 가자."
왜?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는지, 율법주의자들의 문제가 잘 해결됐는지, 교회들이 흔들리지 않고 잘 서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점검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직 몸도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절뚝거리며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출발 직전 바나바와 큰 충돌이 일어난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사건, 마가 요한을 데려갈 것인가의 문제다. 사도행전은 이를 "심히 다투었다"고 표현한다. 온유한 바나바가 그것 하나로 그렇게까지 다툴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고, 결국 바울의 그 불같은 성정이 다 보여진 사건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선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떠난다.
여기서 실라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이 정말 의미심장하다. 실라가 누구인가?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으로 보낸 그 편지의 전달자다. 곧, "율법과 할례 없이도 구원받는다"는 사도들의 공식 결정을 직접 들고 내려온 사람이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실라를 동행자로 삼았다는 것은 이런 메시지였다.
"내가 1차 전도여행 때 너희에게 전했던 그 복음, 그것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공식 입장이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증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율법으로 흔들리지 말라."

4. 디모데와 디도 — 바울의 할례관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두 사람

바울과 실라는 걸어서 길을 떠난다. 더베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울의 고향 다소가 나오는 그 길이다.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한 사람을 픽업한다. 디모데다.
디모데는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바로 그 도시 루스드라 출신이다.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아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를 데려가면서 할례를 베푼다.
이게 너무 아이러니하다. 율법과 할례에 그토록 반대했던 바울이, 자기 동역자에게는 할례를 베푼다고?
여기서 바울의 신학이 드러난다. 디모데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었다. 당시 유대 전통에서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도 유대인이다. 즉 디모데는 태생부터 이미 유대인이었다. 다만 디아스포라로 살아오면서 할례만 받지 않았을 뿐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네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는 어차피 유대인이니까,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좋도록 정리하자"**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회당에 들어가고 성전에 출입하고 유대인들과 식사하는 데 있어 불필요한 장벽을 없앤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에서 한 그 말 그대로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디모데는 이미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유대인답게 정리됐다.
반면에 디도는 어떤가? 디도는 바울의 가장 친한 동역자 중 한 명이었다. 안디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로 올라갈 때 함께 갔던 사람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 2장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도, 함께 갔던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받지 않게 했다." (참고: 갈 2:3-5)
디도는 태생부터 이방인이었고, 바울은 그에게 끝까지 할례를 주지 않았다. 똑같이 바울의 동역자고 똑같이 사역의 동반자지만, 한 명에게는 할례를 주고 다른 한 명에게는 끝까지 주지 않은 것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보일 때, 바울의 입장이 가장 선명해진다.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이방인 디도에게는 끝까지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만약 디도에게 할례를 줬다면, 그것은 곧 "구원을 위해서는 결국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굴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할례는 구원과 무관한 문화적, 전략적 선택일 수는 있다. 그래서 본래 유대인이었던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베풀었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유대인 선교라는 사명을 위한 자율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5. 결론 — 헛된 소망을 무너뜨린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서 2차 전도여행까지 이 모든 흐름을 관통하는 한 줄의 메시지가 있다.
"할례를 받으면,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헛된 소망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은 할례나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바울은 이 한 문장을 위해 돌에 맞았고, 이 한 문장을 위해 갈라디아서를 썼고, 이 한 문장을 위해 예루살렘까지 올라가 사도들과 변론했고, 이 한 문장을 위해 아직 아물지도 않은 몸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디모데와 디도라는 두 동역자를 통해, 그 한 문장이 율법주의의 굴복도 아니고 율법의 무조건적 거부도 아닌, 복음의 자유 안에서의 분별임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구원받는다고 은근히 믿고 있는가? 어떤 행위, 어떤 자격, 어떤 신분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고 헛되이 소망하고 있는가?
바울은 그 모든 헛된 소망을 향해 자신의 흉터를 보여주며 말한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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