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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목사 칼럼 콕 찌르면_사도행전 25장 13-22절 콕 찌르면풍선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바늘로 콕 찌르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물이 터져 나옵니다. 풍선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것이 달라집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베스도의 입에서 나온 것베스도는 바울을 재판했던 로마 총독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새 총독의 취임을 축하하러 가이사랴를 방문했고, 그들은 여러 날을 함께 머물렀습니다. 공식적인 업무만 논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차를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을 것입니다.그런데 자연스러운 대화 중에, 베스도의 입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이야기가 튀어나왔습니다. 베스도는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문화와 종교에 정통한 아그립바 왕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예수라는 어떤 죽은 자에 관한 것이.. 더보기
  • 왕목사 칼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전자기 유도 "하나님을 사랑해야지!"이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그러나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전자기 유도의 원리물리학에는 흥미로운 원리가 있습니다.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생깁니다. 전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이죠.그렇다면 반대로 자기로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우리는 전류를 직접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전류가 흐르도록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어떻게요? 자기장의 변화를 만들어내면 됩니다.자석을 코일 가까이 가져가거나 멀어지게 하면, 그 자기장의 변화로 인해 코일에 전류가 흐릅니다.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니 전류가 저절로 생긴 것입니다.이것이 전자기 유도입니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인덕션, 발전기가 모두 .. 더보기
  • 왕목사 칼럼 형식적 찬양과 참된 예배: 더둘로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_사도행전 24장 1-9절 "벨릭스 각하! 우리는 각하 덕분에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 왔으며..."사도행전 24장에 등장하는 법률가 더둘로의 말입니다. 매끄럽고 능숙한 그의 말솜씨는 오늘날 사회생활 잘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칭찬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심일까요, 아니면 목적을 위한 수단일까요?입에 발린 찬양역사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벨릭스의 통치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동과 반란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더둘로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벨릭스 역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것이 형식적인 말이라는 것을요.그렇다면 벨릭스는 이 찬양을 들으며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마도 무덤덤했을 것입니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 치우고, 본론이 뭔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진심이 없는 찬양은 듣는 .. 더보기
  • 왕목사 칼럼 역전의 하나님 - 40명의 암살자가 470명의 경호원이 되다_사도행전 23장 12-24절 완벽한 계획사도행전 23장에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등장한다. 4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모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들의 계획은 치밀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설득하고, 천부장에게 재심문을 요청한 뒤, 바울이 오는 길목에 매복해서 암살하는 것. 종교 지도자들도 동의했고, 40명이 목숨을 건 완벽한 계획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 40명이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 470명의 로마군이 바울 한 사람을 호위하며 밤 9시에 가이사랴로 출발했다. 병사 200명, 기병대 70명, 창병 200명. 암살자들이 경호원으로 바뀌었고, 그것도 10배가 넘는 숫자로. 이것이 우연일까?역전 뒤에 숨은 목적이 극적인 반전 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바울이 체포되기 전날 밤, 주.. 더보기
  • 왕목사 칼럼 삶으로 증명하는 믿음_히브리서 11장 결말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참 편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압니다. 그래서 속 편하게 봅니다. "아,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구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구나.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멈추시지." 우리는 긴장하지 않습니다.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입장을 바꿔 놓고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그 상황 속 주인공이라면 어떨까요?"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다"는 것.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다"는 것.이것이 그 입장에서는 말이 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긴장의 연속이었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의 인생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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