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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목사 칼럼

바울의 동역자들과 선교 전략 - 사도행전 19장 배경 연구

들어가며: 전략가로서의 바울

사도행전 19장 21-22절을 처음 읽으면 단순한 여행 계획처럼 보입니다. 바울이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몇몇 사람을 먼저 보내는 것으로요. 하지만 이 짧은 구절 뒤에는 놀랍도록 정교한 선교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이 도시 저 도시를 순회하는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전략가였습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전략적으로 파송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떻게 선교의 지경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특히 바울의 핵심 전략인 '선파송(先派送)', 즉 자신이 가기 전에 동역자들을 먼저 보내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1. 바울의 여정 계획: 큰 그림을 그리다

시간과 장소를 이해하기

우선 바울이 이 계획을 세울 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때는 주후 55-56년경, 바울은 에베소에서 거의 3년 가까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은 바울의 세 번째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다루는데, 이 도시에서 바울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들이 일어났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자신들의 마술책을 불태웠으며, 주님의 말씀이 힘있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 사역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감지합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다음 계획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 계획은 명확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지방을 거쳐 아가야 지방으로 가고, 그다음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최종적으로는 로마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전략적 경로

이 경로를 지도 위에 그려보면 바울의 의도가 보입니다. 마케도니아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같은 도시들이 있었습니다. 아가야에는 고린도와 아테네가 있었습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곳들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전에 이미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여 그들을 굳건히 세우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건물을 지을 때 새로운 층을 올리기 전에 먼저 기초를 점검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교회 개척이 단순히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시험을 견디며,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고, 모든 길이 통하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거점 삼아 더 서쪽, 즉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15장 23-24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핵심 전략: 동역자를 먼저 보내라

전략의 발견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선교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22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바울은 자기를 돕는 사람 가운데 두 사람, 곧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먼저 마케도니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을 더 머물렀습니다."

'먼저'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기 전에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먼저 보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전령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자신보다 앞서 보내어 그곳에서 실제로 사역하게 했습니다.

이 전략의 목적들

이 선파송 전략이 왜 그토록 효과적이었는지 생각해봅시다. 첫째, 동역자들은 먼저 가서 교회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세밀한 부분들, 교회 안의 분위기, 사람들의 영적 상태, 당면한 문제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먼저 검사 결과를 받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동역자들은 바울의 방문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소를 예약하거나 일정을 잡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교회를 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문제가 있다면 먼저 다루기 시작하고, 바울이 왔을 때 더 깊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이것은 양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동역자들은 교회의 소식을 바울에게 전할 수 있었고, 바울의 소식과 가르침을 교회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편지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즉각적인 소통이었습니다.

넷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을 통해 바울은 동시에 여러 곳에서 사역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러 있는 동안,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나중에 보겠지만 디도는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서 각각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라는 한 사람이 동시에 네 개의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적 효과

이 전략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바울이 실제로 그 도시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완전히 낯선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문제들이 이미 상당 부분 해결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초적인 문제들을 다루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더 깊은 가르침과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3. 구체적 사례 1: 빌립보와 디모데

빌립보로 향한 디모데

행 19장 2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케도니아로 보냅니다. 마케도니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빌립보였습니다. 빌립보서를 읽으면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라는 것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목회자적 마음을 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소식을 듣고 "안위를 받으려" 했습니다. 바울에게 교회들은 단순한 사역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기쁨이었고, 그의 영적 자녀들이었습니다.

왜 디모데였는가

바울은 왜 하필 디모데를 보냈을까요? 2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디모데는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자기 일처럼 진실히 생각할 사람이었습니다.

22절은 더 구체적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이미 검증된 동역자였습니다. 빌립보 교회 사람들도 그를 알고 신뢰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는 아들 같은 존재였고, 빌립보 교회에게는 이미 친숙한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 파송의 결과

디모데가 빌립보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결과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디모데를 통해 바울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언제쯤 방문할 수 있을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파악하여 바울에게 보고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디모데의 방문을 통해 빌립보 교회는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이 비록 멀리 있지만, 그들을 잊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디모데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4. 구체적 사례 2: 고린도와 디도

고린도 교회의 복잡한 상황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특별히 어려운 사역지였습니다. 이 교회와 바울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주후 50-52년경에 고린도에서 약 18개월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고, 도덕적 문제들이 있었으며, 신학적 혼란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후 54년 봄, 에베소에 있을 때 고린도전서를 써서 이 문제들을 다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편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바울은 직접 고린도를 방문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방문인데, 고린도후서를 보면 이 방문이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절에서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가지 않기로 작정하였노니"라고 말합니다. 무언가 매우 상처가 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사도행전에는 이 두 번째 방문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통해 이 방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4절과 13장 1절에서 바울은 "세 번째"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디도의 파송

두 번째 방문이 실패로 끝난 후, 바울은 또 다른 편지를 썼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고린도후서 2장 3-4절에서 바울은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너희에게 썼노니"라고 말합니다. 이 편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바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편지를 디도에게 주어 고린도로 보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임무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적대적이었고, 바울의 사도직까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디도는 이런 적대적인 환경 속으로 들어가 바울을 변호하고, 교회를 회개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디도의 성공

그런데 놀랍게도 디도는 성공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5-7절을 보면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 디도가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디도가 가져온 소식은 놀라웠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너희가 슬퍼하여 회개하기까지 하였음을 알았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디도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바울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교회를 회개로 이끌었으며, 바울과 교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편지를 전달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디도는 중재자이자, 화해자이자, 목회자로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디도 파송의 결과

디도의 성공적인 사역 덕분에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기쁨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후 56-57년 겨울, 바울이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교회는 바울을 환영했고, 바울은 그곳에서 평안히 3개월을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바울은 로마서를 작성했습니다.

만약 디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여전히 적대적인 교회를 만났을 것이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관계 회복에 써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디도가 먼저 가서 그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바울은 도착했을 때 이미 회복된 교회를 만날 수 있었고, 더 깊은 가르침과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5. 구체적 사례 3: 로마와 아굴라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여정

세 번째 사례는 가장 흥미롭습니다. 바울이 행 19장 21절에서 "로마도 꼭 가 봐야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로마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바울이 실제로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로마에 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절을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아굴라를 만났다고 나옵니다. 그때가 주후 50년경이었습니다.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는 원래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글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고린도로 피난 와 있었습니다.

바울과 이 부부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집에 머물며 함께 일했고, 그들은 바울의 가까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바울에게 숙식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주후 52년경,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아굴라 부부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에베소로 갔고, 거기서 계속 사역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6절을 보면, 이 부부가 에베소에서 아볼로라는 웅변가를 만나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쳤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이 부부가 단순한 평신도가 아니라, 성경에 능통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역자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로의 귀환

그런데 주후 54년에 중요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글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네로가 새 황제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추방령이 사실상 해제되었고, 유대인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즈음 아굴라 부부는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주후 57-58년 겨울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 이 부부는 이미 로마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 3-5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또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전략적 의미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아굴라 부부는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자기 집에 있는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정교회를 개척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선교사로서 로마에 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이었을까요? 바울이 행 19장 21절에서 로마에 가야겠다고 말한 시기와 아굴라 부부가 로마로 간 시기가 거의 일치합니다. 이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바울의 전략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가기 전에,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먼저 보내어 그곳에 기반을 마련하게 했던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보면 바울이 로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23-24절에서 바울은 로마를 경유하여 스페인까지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로마는 바울에게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서방 선교를 위한 전략적 거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점을 준비하는 일을 아굴라 부부에게 맡긴 것입니다.

아굴라 부부 파송의 결과

바울이 주후 60년경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을 때,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그는 완전히 낯선 곳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을 보면 로마에 이미 형제들이 있었고, 그들이 바울을 영접하러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굴라 부부가 이미 몇 년 동안 로마에서 사역하며 교회를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로 지냈지만, 그는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옥중서신들을 썼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굴라 부부가 이미 로마에서 기반을 닦아놓았기 때문입니다.


6. 동시다발적 사역: 지경의 확장

네 개의 전선

이제 큰 그림을 봅시다. 주후 55-56년경,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은 에베소에 있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에베소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서는 바울 자신이 직접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0절을 보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통해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동시에 마케도니아에서는 디모데와 에라스도가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아가야의 고린도에서는 디도가 어려운 상황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교회를 회개로 이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가정교회를 세우고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로마 방문을 위한 기반을 닦고 있었습니다.

1+3=4의 수학

이것은 놀라운 그림입니다. 바울이라는 한 사람이 동시에 네 개의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혼자 사역했다면, 그는 한 번에 한 곳만 방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베소를 떠나 빌립보로 가고, 거기서 고린도로 가고, 또 로마로 가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혼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전략적으로 파송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의 사역은 곱하기가 되었습니다. 1+1+1+1=4가 아니라, 1×4=4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각 동역자도 또 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경의 확장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바울은 빌립보에 물리적으로 있지 않았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거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디모데를 통해서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연장이었고, 바울의 대리자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선교 전략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선교의 지경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바울 혼자였다면 평생 동안 몇 개의 도시만 방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역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바울은 수십 개의 도시에서 동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7. 동역자들의 특징: 신뢰와 자율성

검증된 신뢰

바울이 파송한 동역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무나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에 대해 바울은 빌립보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디모데는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자기 일처럼 진실히 생각했습니다. 22절은 더 나아가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디모데는 단순히 바울의 조수가 아니라, 아들처럼 함께 수고한 동역자였습니다.

디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인 고린도 교회 문제를 맡겼습니다. 이것은 디도에 대한 바울의 절대적 신뢰를 보여줍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16장 3-4절에서 "나의 동역자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나니"라고 말합니다. 이 부부는 바울을 위해 자신들의 생명까지 걸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자율성과 책임

흥미롭게도 바울은 동역자들에게 명확한 사명을 주었지만, 어떻게 그 사명을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미시적으로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역자들을 신뢰했고, 그들이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디도가 고린도에서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바울이 세세한 지침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디도는 현장에서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책임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이것은 리더십에 대한 중요한 교훈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며, 그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속적인 소통

하지만 자율성이 방임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동역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았고,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각 지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필요할 때는 조언과 지침을 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을 보면 바울이 디도의 도착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5절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디도가 돌아와 좋은 소식을 전했을 때, 바울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8. 현대적 적용: 사역의 원리들

원리 1: 큰 그림을 그리라

바울의 선교 전략에서 우리가 배우는 첫 번째 원리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눈앞의 사역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케도니아, 아가야, 예루살렘, 로마, 심지어 스페인까지 내다보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에만 매몰되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큰 그림을 보고, 그것을 향해 전략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리 2: 동역자를 세우라

바울의 성공 비결은 혼자 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동역자들을 발굴하고, 훈련시키고, 세웠습니다. 디모데, 디도, 아굴라, 브리스길라, 누가, 실라, 바나바 등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할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동역자들을 세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노력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원리 3: 선제적으로 준비하라

바울은 자신이 가기 전에 동역자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이것은 선제적인 전략이었습니다. 문제가 터진 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손을 쓰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관리의 최선은 예방입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다루고,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개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원리 4: 신뢰하되 확인하라

바울은 동역자들에게 자율성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방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할 때 개입했습니다. 이것은 "신뢰하되 확인하라(trust but verify)"는 원리입니다.

리더십에서 균형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통제하면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방임하면 방향을 잃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권한을 주되, 동시에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원리 5: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라

바울과 동역자들의 관계는 일회성이 아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수년 동안 함께 사역했습니다. 아굴라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업무 관계가 아니라, 깊은 영적 유대로 맺어진 가족 같은 관계였습니다.

오늘날 사역에서도 장기적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단순히 일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로, 가족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관계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9. 결론: 함께 가는 여정

혼자가 아닌 함께

사도행전 19장 21-22절은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심오합니다. 바울은 혼자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동역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략적으로 파송함으로써, 동시에 여러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교회는 슈퍼스타 한 명이 모든 것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곳입니다.

지경의 확장

바울의 전략을 통해 선교의 지경이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동역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그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시작된 복음이 마케도니아, 아가야, 로마, 그리고 결국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곱하기로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수고가 모여 큰 영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

근본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사역에 동참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협력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심었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바울은 심는 사람, 아볼로는 물 주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는 분입니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하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적용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큰 그림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단기적 목표뿐 아니라 장기적 비전을 가집시다.

둘째, 동역자를 찾읍시다.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함께 일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을 세웁시다.

셋째, 전략적으로 일합시다. 무작정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계획하고 실행합시다. 바울처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치합시다.

넷째, 신뢰하되 소통합시다. 동역자들에게 자율성을 주되,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격려하고 지원합시다.

다섯째, 장기적 관계를 구축합시다. 사람들을 일회용으로 보지 말고, 평생 함께 갈 동역자로 봅시다.

마치며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할 동역자들을 주셨음을 감사합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우리의 "디모데"와 "디도"와 "아굴라"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갑시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도 꼭 가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로마에 갔습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갈 수 있었던 것은 아굴라 부부가 먼저 가서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로마"를 향해 나아갑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의 지혜와 전략을 따라 나아갑시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그분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소망합시다.

"내가 심었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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