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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목사 칼럼

섬기는 이들을 위하여_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3절

섬기는 이들을 위하여

섬기는 이들을 위하여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3절을 읽다가 멈췄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며,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 데살로니가전서 5:12-13, 새번역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는 이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 말씀이 담긴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날은 갑자기 온다.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언제 끝이 오든, 그 끝이 오기까지 우리는 계속 뛰어야 한다고.

 

영원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오늘을 더 성실하게 산다. 그래서 바울은 당부한다. "지금처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달라(11절). 서로 화목하게 지내기 바란다(13절)."

 

이 경주를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 맥락 위에서 말한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는 이들을 알아보라고.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공식적으로 임명된 지도자가 없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도시를 떠나야 했다. 훈련된 목사도, 직함을 가진 장로도 없었다. 그런데도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섬기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친 사람 곁에 머물고, 예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킨 사람들. 지금의 목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러분들 사이에서 섬기는 조장, 임원 같은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알아보십시오"라고 번역된 자리에 쓴 헬라어는 εἰδέναι(에이데나이)다. 이 단어는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는 것을 "알아보라"는 촉구다. Amplified Bible은 이렇게 옮긴다. "recognize them for what they are, acknowledge and appreciate and respect them all."

 

이미 당신 곁에서 수고하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을 보라는 말이다. 바울은 그 근거도 분명히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직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직위가 높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실제로 감당하고 있는 그 수고 자체를 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자꾸 특정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찬양팀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매주 연습하러 온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을 한다고 더 좋은 직장을 얻거나,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주 그 자리를 감당한다.

 

임원들은 어떤가. 시간은 시간대로 쓴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돈도 쓰고, 기름값도 들이고, 에너지도 쏟는다. 잘해도 본전이고, 조금만 어긋나면 원망 듣기 딱 좋은 자리다. 그래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조장들도 그렇다. 굳이 직책을 맡지 않아도 됐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하게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먼저 찾아가고, 집으로 초대하고, 기도제목을 묻고, 잘 지내는지 확인한다.

 

대가가 없다. 돌아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수고한다.

 

우리의 예배가 유지되고, 공동체가 유지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섬김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바울의 요청은 단순하다. 이들을 인정해주라. 칭찬해 주라. 사랑으로 돌려주라. 서로가 화목하여 하나될 때, 우리는 이 경주를 계속해서 뛸 수 있다. 그리고 그 화목의 시작은, 곁에서 수고하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봐 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 묵상을 마치면서 잠시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계속 뛸 수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기도해주고,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를 지켜줬기 때문에. 그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혹시 지금 당신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특별한 직함이 없어서 아직 제대로 알아봐 주지 못한 사람.

 

오늘, 한 번만 제대로 말해주자.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 있어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오늘을 버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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