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긴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그것을 사용하여, 자신이 만난 예수를 증언하는데 사용하였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학벌, 능력, 자격, 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짜 목적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위기를 맞았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야고보의 조언을 따라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행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바울을 거짓으로 고발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났고, 로마의 천부장이 군인들을 이끌고 와서 소란을 진압했다. 바울은 거의 죽을 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 순간을 복음을 전할 기회로 보았다. 그는 천부장에게 말을 걸며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바울은 위기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빌드업을 시작한 것이다.
상황에 맞는 전략적 선택
흥미로운 점은 바울이 천부장에게 말할 때와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서로 다른 언어와 다른 내용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를 바꾼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 맞춰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천부장에게 말할 때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천부장은 바울을 이집트 출신 테러범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유창한 그리스어로 말하자 깜짝 놀랐다. "그리스 말을 할 줄 아는가?" 바울은 즉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나는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며, 그 유명한 도시의 시민입니다." 다소는 당시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이 테러범이 아니라 교양 있는 시민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군중을 향해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히브리어로 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더 조용해졌다." 히브리어는 성스러운 언어이자 성경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시에서 자랐고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그 밑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대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하나님에 대해 열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여 그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똑같은 정통 유대인이었음을 강조했다. 가말리엘의 제자, 바리새인, 율법에 엄격한 사람,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 바울은 "나는 당신들과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도구가 되다
바울에게 그리스어 능력, 다소 시민권, 히브리어 능력, 가말리엘의 제자라는 신분, 바리새인 배경은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는 상황에 따라 이 도구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했다. 천부장에게는 "그리스어와 다소 시민권"으로 교양인임을 보여주었고,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어와 가말리엘 제자 신분"으로 같은 유대인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바로 이것들을 "배설물", 즉 똥이라고 했다. "나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이며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새 사람이며 열성으로 교회를 핍박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내가 참으로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입니다."
할례, 족속, 지파, 바리새인 신분, 율법의 의로움까지 전부 똥이라고 했다. 왜 똥이라고 했을까?
목적과 수단의 구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도 화장실을 다녀온 사람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고 미련 없었을 것이다. "아, 이제 그런 것에 집착 안 해도 되는구나!" 왜 그랬을까?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들을 버린 게 아니었다. 가치를 재배치한 것이다. 똥처럼 여긴다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사용한다는 것은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목적은 예수, 수단은 이 모든 것들."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더 이상 나의 정체성이 아니야. 하지만 예수님을 전하는 데 필요하면 쓸 수 있어." 운전면허증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엄청 애쓴다. 그런데 면허증 자체가 목적인가? 아니다. 운전하려는 것이다. 면허증은 수단이다. 바울에게 그리스어, 히브리어, 다소 시민권, 가말리엘 제자, 바리새인 신분은 모두 면허증 같은 것이었다. 목적지인 예수님께로 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무엇을 desperately 원하고 있는가? 청년들은 비자, 영주권, 학점, 좋은 직장, 좋아하는 사람, 커리어, 꿈을 원한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바울처럼 이것들을 다 버려야 하는가? 배설물처럼 여기고 포기해야 하는가? 솔직히 많은 청년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이걸 배설물로 여기라고? 그건 바울이나 목사님이나 할 수 있는 얘기죠. 이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맞다. 정말 중요하다. 영주권 없으면 불안하고, 좋은 직장 가고 싶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괴롭다.
그런데 분명히 말한다. 아니다! 버리는 게 아니다! 노력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 가지 도전
첫째, 게으른 청년들에게 말한다. "어차피 이 세상 것들은 다 헛되니까 열심히 안 해도 되지 않나요?" 아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 학점? 열심히 받아라! 좋은 직장? 최선을 다하라! 자격증? 따라! 왜 그래야 하는가? 하나님이 당신을 쓰실 때 요긴하게 쓰일 '쇠똥'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열심히 하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저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혹시 제가 잘못된 이유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이유를 점검하라. 그것이 당신을 존귀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인가?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모든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것이 나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다 할 때 내어드릴 수 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만 한다.
개똥인가, 쇠똥인가
한국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와 "쇠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가 있다. 개똥은 아무리 하찮고 흔해 빠진 것이라도 막상 쓰려면 찾기가 힘들다.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쇠똥도 하찮지만,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감사하게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당연히 따야 한다! 그런데 면허가 목표인가? 아니다. 면허는 수단이다. 면허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운전하라. 운전도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영주권도, 학점도, 좋은 직장도 마찬가지다. 따야 하는가? 얻어야 하는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네! 당연히! 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쓰라.
하나님이 지금 당장 "네가 가진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desperately 원하는 것, 그것이 없으면 당신은 무너지는가? 이번 주에 점검해보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목적인지 수단인지, 나의 목적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
당신이 가진 것은 개똥인가, 쇠똥인가?
나눔 질문
질문 1: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나요?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나요?
학점, 영주권, 좋은 직장, 연애, 인정받는 것 등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없으면 내가 무너지는가? 그것을 얻으면 나는 행복하고 존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예수님보다 더 큰 목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자.
질문 2: 하나님이 "네가 가진 그것을 지금 내놓으라"고 하시면 나는 내놓을 수 있나요?
바울은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를 필요할 때 복음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 이상 그의 정체성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순종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질문 3: 내가 지금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들은 '개똥'인가 '쇠똥'인가?
개똥은 흔하지만 막상 필요할 때 쓸모가 없다. 쇠똥은 흔하지만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하나님 입장에서 내가 준비하는 것들(학업, 자격증, 능력, 경험)이 단지 나를 존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인가? 이번 주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점검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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