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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목사 칼럼

삶으로 증명하는 믿음_히브리서 11장

결말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참 편안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압니다. 그래서 속 편하게 봅니다. "아,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구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구나.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멈추시지." 우리는 긴장하지 않습니다.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놓고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그 상황 속 주인공이라면 어떨까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다"는 것.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다"는 것.

이것이 그 입장에서는 말이 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긴장의 연속이었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의 인생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마음 편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기에, 하루하루가 불확실성 속에서의 긴장이었고,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성경 속 이야기의 주인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현재에 갇혀 있어서 과거로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앞으로 빨리 돌리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 승리를 이미 알고 계시기에,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응원만 하고 계실 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

믿음은 어떻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믿음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은 우리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기대하는지, 그것이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야고보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2:18)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안에 있어서 꺼내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을 그들의 삶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꺼내 보여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은 "삶으로 나타난 믿음"을 말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행위로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추상적인 사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은 구체적인 삶의 실천입니다.

믿음과 앎의 차이

우리 모두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게 정말 믿음의 영역입니다. "아는 영역"이 아닙니다.

알면 모두 다 합니다. 내일부터 주식이 일주일 동안 상한가를 칠 것을 "안다"면 다 사겠습니까? 당연히 삽니다. 그런데 "믿음"의 영역은 다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하는 행동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통해 그의 믿음이 나타났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을 믿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했고,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를 떠나게 될 것을 말하고 자신의 뼈를 가지고 가라고 명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들을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

모세는 왕자의 삶을 거절하고 광야로 나갔으며, 유월절 예식을 정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고, 라합은 정탐꾼을 영접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같습니다. 모두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모두 믿음을 말과 행함으로 나타냈습니다.

무엇이 아니라 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왜" 하느냐입니다. 믿음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라 믿어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7일 동안 말씀하신 대로 성 주위를 걷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후반부를 보면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승리도 믿음이고, 고난도 믿음입니다. 성공도 믿음으로 살아낸 것이고, 실패처럼 보이는 순교도 믿음으로 살아낸 것입니다.

믿음은 형이상학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입니까?

우리 모두는 지금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이 질문을 붙들고 나가십시오.

나는 무엇을 믿는가? 그 믿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믿음은 생각에 머물지 않습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당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당신의 믿음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2025년 11월 19일 새벽기도회 설교(히브리서 11장)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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