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릭스 각하! 우리는 각하 덕분에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 왔으며..."
사도행전 24장에 등장하는 법률가 더둘로의 말입니다. 매끄럽고 능숙한 그의 말솜씨는 오늘날 사회생활 잘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칭찬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심일까요, 아니면 목적을 위한 수단일까요?
입에 발린 찬양
역사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벨릭스의 통치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동과 반란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더둘로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벨릭스 역시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것이 형식적인 말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벨릭스는 이 찬양을 들으며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마도 무덤덤했을 것입니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 치우고, 본론이 뭔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진심이 없는 찬양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어떠셨을까요?
더둘로는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벨릭스에게 돌렸습니다. "평화"도, "개혁"도, "공로"도 모두 사람의 것으로 돌렸습니다. 설령 그것이 법정에서의 수사적 표현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을 앉힌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어떠셨을까요?
나의 거울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저는 불편했습니다. 더둘로의 모습에서 제 자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또한 예배가 늘 온전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마땅히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습관처럼, 형식처럼 예배를 드린 적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으셨을까?
마치 더둘로 본인도 관심 없고, 벨릭스도 관심 없는 매끄러운 말 같은 예배였던 거 같았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도 진심이 아니고, 받으시는 분도 별 관심이 없는 그런 예배 같았습니다.
벨릭스가 더둘로의 빈말에 무덤덤하고, 그래 본론이 뭔데? 나한테 뭘 원하는데? 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도 나의 형식적인 예배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 깊은 찔림이 있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으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느니라" (이사야 29:13)
예배를 점검하는 질문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진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예배당에 앉아 있다고, 찬양을 부른다고, 기도한다고 해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나의 찬양은 온전히 주님을 향하고 있는가? 더둘로처럼 말만 하나님께 드리고,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입술의 찬양과 내 마음의 방향이 일치합니까?
나의 감사는 진짜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가? 좋은 일이 생길 때, 첫 번째로 감사를 드리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사람입니까, 환경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나는 진심인가?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기계적으로 찬양을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예배는 진정성이 있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의례적인 말 치우고,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다시 시작하는 예배
저는 오늘 결단했습니다.
참되게 예배하겠습니다. 전심으로 예배하겠습니다. 나의 마음을 나의 태도에 담겠습니다. 집중해서 예배하겠습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겠습니다. 마음을 담아 기도하겠습니다. 바르게... 아니, 진심으로 예배하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팔로워들은 리더보다 더 앞서 가기 어렵습니다. 팔로워가 리더보다 더 앞서간다는 것은 그것은 리더의 영향이 아니라, 다른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겠죠. 제가 예배하는 것만큼 청년들이 예배할 것입니다. 그 이상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청년들에게 참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더둘로의 거울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다시 예배당에 들어서며, 스스로 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물어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가?" "나는 지금 누구에게 찬양하러 가는가?" "나는 지금 진심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형식적인 예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을 원하십니다. 전부를 원하십니다.
더둘로의 입에 발린 찬양이 아닌, 다윗의 온 마음을 다한 예배를 드리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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